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셸 푸코 (문단 편집) === 초년기 === 미셸 푸코는 [[1926년]] [[10월 15일]] [[프랑스]]의 중서부 소도시 푸아티에의 유력 부르주아지 가문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첫째는 장녀 프랑신, 둘째는 장남 폴-푸코 미셸, 셋째는 차남 드니.] 할아버지는 퐁텐블로의 외과의사였고, 아버지 역시 푸아티에에서 개업한 외과의사이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다. 아버지는 같은 대학의 외과의사의 딸인 안느 말페르와 결혼했다. 푸코 가문에는 한가지 전통이 있었는데 맏아들의 이름을 '폴 푸코'로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이름도 폴 푸코였고, 아버지 이름도 폴 푸코였다. 따라서 이 가문의 맏아들 이름 역시도 '폴 푸코'가 될 예정이었다. 안느 말페르는 이 전통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기에 짧은 줄을 하나 긋고 두 번째 이름인 미셸을 집어넣었다. 물론 호적이나 학적부에는 폴이라고 적힐 것이지만, 그녀는 아들을 항상 '폴-미셸'이라고 부르는 데 만족했다. 누나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누나와 떨어지기 싫었던 푸코는 같이 학교 수업을 들었다. 어머니 안느 말페르가 앙리 4세 학교 여교장에게 양해를 구한 덕택이었다. 당시 푸코는 4살에 불과했다. 푸코는 거기서 글자를 곧 깨우쳤다고 한다. 그렇게 2년간의 유아수업을 마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계속 그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1940년 무렵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푸아티에에 피난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시골 도시의 학업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항상 우등상을 휩쓸었던 푸코의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자, 어머니는 아들 푸코를 좀 더 안정된 생스타니슬라스 학교로 전학시켰다. 다행히 그 학교에서 푸코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중등교육 과정이 마칠 시점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푸코가 외과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는 반대로 푸코는 철학이 하고 싶었다. 푸코가 고집을 꺾지 않자, 집안에는 한동안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자며 남편을 설득했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은 차남 드니가 외과 의사가 됨으로서 이룬다.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푸코는 자기가 선택한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파리 윌름 가에 있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 직후에 치뤄진 첫 번째 시험에서 푸코는 아쉽게 떨어졌다. 구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필기 시험 100등까지 였는데, 푸코는 101등을 해버린 것이다. 실망은 엄청났지만 푸코는 낙담하지는 않았고 [[재수(입시)|재수]]를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해 그는 전체 4등으로 고등사범학교에 합격했다. 그해 합격한 인원은 38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